2017.05.31 13:47

두 엄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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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3월이 시작되고 2주일 쯤 흐른 어느 날.

학교 인근 팬시점 주인은 학교로 와서 CCTV에 찍힌 두 명의 여자아이 사진을 가지고 와 교무실로 왔다.

“이번엔 그냥 있지 않을 겁니다”

단단히 화가 난 팬시점 주인은 이미 사진의 주인공이 누군지 수소문 했고 두 아이는 바로 우리반 효주와 영선이었다.

 

효주(가명)와 영선(가명)이는 3학년 때부터 단짝 친구로 지냈다. 외동으로 자랐지만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피아노, 바이올린 등 악기도 잘 다뤄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효주에 비해 영선이는 효주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4학년이 되어 사춘기 초입에 다다른 효주와 영선이는 지난 겨울부터 부쩍 외모에 관심이 많아져 간단한 화장품을 파는 팬시점을 자주 갔다.

부족한 용돈으론 사고 싶은 화장품을 살 수 없어 충동적으로 한 두개 슬쩍 했다 걸린 것이다.

이미 그 팬시점은 인근 여러 학교 여학생들의 단골 놀이터였고 장사가 잘되는 반면에 사라지는 물품도 종종 생겨 주인은 이미 여러 차례 당한 끝에 화질 좋은 CCTV까지 설치하게 되었다.

 

“제가 잘 달래고 지도 하겠습니다”

 

교무실에서 버티고 있던 주인을 잘 달래 보내고 상담실에서 효주와 영선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겁에 질려 하얀 얼굴이 더 하얗게 된 효주와 아직도 무슨 영문인지 모른다는 듯 멍한 표정의 영선이는 열심히 경위서를 쓰고 있었다.

아이들의 쓴 경위서를 읽어보니 효주는 아주 반성을 많이 하고 있는 반면 영선이는 사실관계를 적는 것조차 엉망이었다.

자기중심적인 시선이 강해 이야기의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차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본 바로는 충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듯 보였다.

하긴 3월에 만나 얼마나 지났다고 아이들 내면까지 볼 수는 없었다.

단, 저지른 잘못에 대해 반성하고 용서를 빌며 훔친 물건에 대해서는 배상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바로 부모님을 학교로 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효주와 영선이 어머니는 허겁지겁 학교로 오셨다.

얼마나 놀랬을까? 그래도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담임인 저도 놀랬지만 어머니들도 놀라셨을 겁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아이들의 성장에 겪어야 할 과정이라 생각하고 지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들을 탓하려고 모신 것이 아니니 두 아이의 장래를 위해 교사와 부모가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차쌤은 어머니들을 달래면서 담임의 지도 의도를 알렸다.

두 분 다 담임의 의도를 받아들이면서도 태도는 조금 달랐다.

 

“선생님 정말 괜찮은 거지요? 이번일로 잘못 되는 것 아니지요?”

효주 어머니는 이번 일로 충격을 엄청나게 받은 듯 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과 학교가 지도하는 대로 잘 따르겠습니다.”

그에 반해 영선이 어머니는 담담한 듯 담임의 의견을 경청 한 후 담담하게 의견을 말했다.

 

어머니 상담을 하면서 효주 어머니의 불안을 줄이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차쌤의 생각과 작전은 이랬다.

방과후에 효주와 영선 그리고 어머니 두 분이 팬시점을 찾아 주인에게 사과하고 적절한 배상을 하기로 했다.

 

“아이들을 혼내는 것은 그리 의미 없습니다. 이미 이 상황은 아이들에게 벌입니다.”

“어머니께서 직접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보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교육적인 행위라고 생각하시고 이번 일로 아이들이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효주어머니는 처음엔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금지옥엽으로 키워온 효주가 가게에서 물건을 훔쳤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거기다 부모가 직접 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와 배상을 하라는 담임의 조언은 더 충격이었을지도 모른다.

 

차쌤도 같이 가서 힘을 보태드릴 수 있다고 했지만 어머니들은 사양하고 그날 아이들과 함께 물건값을 물어주고 사과하는 차원에서 마무리 되었다.

팬시점 주인이 터무니없는 배상금액을 요구하는 바람에 내홍이 없지 않았지만 이 또한 부모와 아이들이 겪어야할 인생 실전 경험이라 생각하고 감내했다.

 

1학기 동안 여학생들은 묘한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겉으로 보기엔 차분했지만 수업시간에 발표 등의 활동은 지극히 꺼렸다.

차쌤이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어딘가 모르게 서로 눈치보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여학생들은 자주 다퉜다.

사소한 오해가 풀리지 않았다.

화해공감수업은 일주일이 멀다하고 벌어졌고 효주와 영선이는 여학생들의 분란의 중심에 있었다.

효주와 영선이는 3학년 때까지는 단짝이었지만 4학년 와서 틀어지기 시작했다.

학년초 팬시점 사건에서 효주와 영선이는 진술을 하면서 서로에게 실망했다.

위기 상황에 살아남기 위해 모른척하고 책임을 떠넘기고 기억나지 않는 기술을 썼는데 그것이 친하게 지내던 서로에게 반목의 씨앗이 생긴 것이다.

보다 활발하고 대인관계기술이 좋은 효주는 영선이가 아닌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고 영선이는 그런 효주가 서운했다.

팬시점 사건이라는 어려운 고비도 잘 넘겼다고 생각하는 영선이는 효주가 자신을 멀리하는 것에 마음 상했고 효주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과정에 영선이에 대한 뒷담화를 하기도 했다.

매번 영선이는 우울해했고 그때마다 차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공개적인 화해공감수업을 하고 나면 오해는 풀렸다.

해당 여학생들은 상담실에 모여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울음바다 속에 사과와 용서의 시간을 가졌다. 며칠 동안은 잠잠하다 다시 영선은 우울해지고 화해공감수업과 사과와 용서의 루틴이 반복되었다.

 

급기야 차쌤이 먼저 영선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저간의 사정을 다 이야기했다.

 

“차쌤을 믿고 기다리라고 하셔서 믿고 기다렸습니다”

 

영선이는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모두 엄마에게 털어놓았다.

자신의 불안을 엄마에게 털어놓으면서 안정을 찾으려했던 것이다.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학교에서 차쌤에게 털어놓은 영선이 이야기보다 강도가 더 높았다.

 

“잘 참으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안정되게 참고 기다리시니 점점 좋아질 겁니다.”

 

걱정은 되나 차분하게 응대하고 기다리는 모습에 희망을 찾았다.

가을이 되어 날이 점점 차가워지고 낙엽지는 시기가 왔다.

학예회 준비로 교실은 어수선하고 떠들썩 했다.

영선이는 난타를 했는데 힘있는 리듬감에 담당선생님의 칭찬을 받고 때마침 모집한 풍물부에서도 소질을 발휘했다.

수학을 영 싫어해 자존감이 떨어졌는데 친구끼리 배우는 과정을 계속하면서 어느 순간에 쑥 커버린 영선이를 볼 수 있었다.

얼굴빛이 달라졌다.

 

“영선아. 요즘은 얼굴빛이 참 편해보인다”

 

배시시 웃는 영선이는 예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꼭 효주가 아니어도 새로 사귀는 친구들과 곧잘 어울렸다. 때 쓰듯 집착하던 모습에서 뭔가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다 어머니 덕분입니다. 담임을 믿어주시고 영선이를 믿어주신 덕분입니다.”

2학기에 영선이 어머니를 만났을 때 차쌤은 고마움을 말했다.

영선이 어머니도 안정되게 학교생활하는 영선이를 보며 그간 있었던 수많은 고단함들을 내비치시며 눈물이 그렁그렁하신다.

 

영선이는 제 궤도를 찾았다. 그런데 효주가 뭔가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영선이가 안정되고 다른 친구들과 잘 지내자 효주는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딱히 겉으로 드러나게 보이는 건 아니지만 좀 더 예민해지고 안정감이 떨어지며 초조해지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사실 효주는 외동딸로 많은 가정에서 관심과 혜택을 받고 있지만 어머니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가 좋아요. 엄마를 사랑해요. 하지만 부담스러울 때도 있어요”

 

언젠가 수업시간에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효주가 무심결에 한 말이 속마음을 들여다 보는 기회가 되었다.

효주는 분명 잘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만족하는 기준이 모호하고 불안해했다.

 

효주의 어머니를 상담해보면 그 불안함이 좀 더 분명하게 보이는 듯 했다.

효주의 작은 행동 변화와 감정의 변화도 어머니는 잘 간파하고 있었다.

문제는 효주의 행동과 감정 변화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듯 했다.

 

“별 문제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강도와 빈도 추세와 경향성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학교에서는 크게 문제점이라고 할 것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차쌤의 관찰에 의한 대증적인 방법들에 대해서 그대지 신뢰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가지 잘 읽어지지 않는 것은 담임이 인정하고 칭찬하더라도 효주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가치판단의 기준과 인정의 기준이 담임이 아닌 다른 누군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심스레 건낸 이 말에 효주 어머니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사실 문제는 저 일수 있어요”

 

효주어머니가 효주를 사랑하는 마음은 느낄 수 있었다.

결혼 전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효주를 낳은 후 잘 키워보겠다는 일념에 육아와 교육에 전념했다고 한다.

조금씩 발전해가는 효주의 모습에 기뻐하고 기대도 커졌다고 한다.

3학년 때부터 조금씩 엄마를 벗어나려 하는 모습에 걱정과 서운함이 몰려왔고 지난 번 팬시점 사건으론 엄청난 실망을 하고 말았다고 했다.

효주는 엄마에게 엄마는 효주에게 서로 소중하고 사랑하는 존재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효주는 그런 엄마를 사랑하지만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란 걸 알려줬다.

“어머니 어찌 보면 효주는 어머니와 제가 생각하는 것 보더 더 훌쩍 커버리고 멀리 떠나 있을지 모릅니다.”

“효주를 사랑하는 만큼 효주를 믿고 보내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입니다.”

“어머니가 효주를 사랑하는 만큼은 아니라도 저를 비롯한 효주를 도와주는 주변을 믿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어머니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세요. 그것이 효주의 행복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입니다”

어머니와의 상담이 효과가 있었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효주도 예전의 화사한 활발함을 찾아갔다. 언제 그랬냐는 듯 효주와 영선이는 다시 몰려다니며 재잘거리곤 했다. 그러다가 다른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효주와 영선이는 무사히 4학년을 마치고 다음 학년으로 올라갔다.

아마 두 녀석은 어머니들과 차쌤이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를 것이다.

이 기회를 빌어 두 분 어머니들도 참 고생하셨다는 말을 하고 싶다.

 

  • ?
    엉뚱선생 2017.06.01 07:09
    제 지갑을 학생에게 털리고 그것에 대해 별 죄책감을 갖지 않는 학생과 그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지갑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제 탓이 있었기에 그냥 넘어갔지만 한번도 아닌 여러번에 걸쳐서 그리고 현금이 아닌 카드까지 손을 댔단 사실에 실망감이 컸습니다 도벽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성장통이지만 그걸 제대로 잡아주느냐 잡아주지 않느냐에 따라 그 학생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겠죠 전 제가 지도교사이면서 피해자였기에 어찌할바를 모르고 1년만에 학교를 옮겼네요 대마왕님의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참고하여 다음엔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해 보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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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왕 2017.06.01 12:28
    참 힘든 경험을 하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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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마쌤 2017.06.01 08:24
    아직 도벽이 있는 아이들을 지도한 적이 없는데, 많이 걱정이 되긴 하네요.
  • ?
    대마왕 2017.06.01 12:29
    도벽은 도벽 만으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다른 작용의 끝에 나오기에 더 어려운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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