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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교단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내 눈에 비친 학교의 모습은 정상적인 이성과 식견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기이하고 비상식적인 일상의 연속이었다. 신규교사였으니 학교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나의 연장자였다. 그런데, 교육선배로서 내게 본을 보여야 할 그들의 행태는 도무지 교육자다운 면모와 거리가 멀었다.
 
당시 내가 학교의 생리 가운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나의 일터에서 내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장, 교감이 교육청 사람들(장학사, 교육장)에게 저자세로 대하는 행신머리였다. 이 기괴한 인과관계를 이해하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릇 모든 억압-피억압 관계는 ‘갑-을 방정식’으로 설명되는 바, 학교의 교사 앞에선 갑질 하는 교장/교감이 교육청과의 관계에서는 을 행세 하는 이유는 자기 입신의 열쇠를 이들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학교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선배 교사들이 내일 갑이 되기 위해 무엇을 부지런히 지어가는 모습도 포착되었다. 그들이 지극정성을 쏟으며 가꾸는 것은 ‘승진’이라는 나무였다. 승진을 좇는 교사가 군림하는 교실생태계 내에서 아이들이란 민초는 그 나무의 그늘에 가려 소외되기 마련이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왕 노릇하는 이들이 승진점수를 좌우하는 관리자와 교육청에는 비굴할 정도로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은 역겹기만 했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교직사회 속(교사-관리자-장학사)의 먹이사슬 내에서 비록 교사가 가장 힘없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긴 해도, 마음먹기에 따라선 당당한 교직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러자면, 이 부조리한 사회가 요구하는 위선적인 도덕관념을 깨부숴야 했다. 쉽게 말해, 또라이가 돼야 하는 것이다. 한심한 관리자와 장학사들을 상대로 또라이짓 몇 번 치르고 난 뒤로 지역에서 ‘이상한 선생’으로 소문나기 시작했다. 이 불편한 낙인찍기는 교육자로서 내 고귀한 신념과 품위를 지키기 위해 불가피한 반대급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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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 학교는 많이 변했다. 예전에 교사를 호령하던 장학사가 지금은 교사를 섬긴다. 만인의 지탄을 받는 악질 관리자의 수는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교육의 본말이 전도되고 아이들이 소외되는 교육 부조리는 여전히 척결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100대교육과정이나 각종 연구학교, 시범학교가 학교교육을 망치는 현상은 예전보다 더욱 심각한 실정이다.
예전에 어느 학교에서 10월말쯤에 갑자기 100대교육과정에 응모한다고 하지도 않은 교육활동을 한 것처럼 서류를 꾸미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3월에 수립할 교육계획을 짜는 해프닝을 벌였던 적이 있다. 시범학교 따위는 시범적으로 아이들을 망치는 교육적폐의 전형이다. 이 광란의 굿판에서는 교육실적 올리기 위해 아이들에게조차 무익한 페이퍼워크를 강요한다. 이게 교육자가 할 짓인가?
 
지역에 따라, 교육감의 정체성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학교의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교사대중의 민의를 무시하고 학교장이 독단과 전횡을 일삼거나 교사의 인권을 유린하는 비민주적 권위주의 또한 여전하다. 이를테면, 배구에 환장한 어느 광역시의 초등교장들은 배구 못한다는 이유로 젊은 교사에게 수치심을 유발하는 쌍소리를 퍼붓기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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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모든 반교육적 부조리와 불의 앞에서 교사들이 침묵하는 점이다. 공사판도 아니고 지성의 전당이어야 할 교직사회에서 벌어지는 이 언어도단의 작태에 대해 왜 교사들은 입을 다무는가? 학교에는 왜 ‘이상한’ 선생이 드문가?
 
만약 공사판 인부가 직무와 무관한 일로, 이를테면 배구를 못한다고 수모를 겪거나 하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일자리에서 쫓겨날 각오하고 확 엎어 버릴 것이다. 그런데, 이른바 철밥통이라 일컫는 학교교사들은 자신의 정당한 저항에 별 불이익이 돌아올 위험도 없는데도 왜 자신의 자존이나 공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저항적 액션도 취하지 않는 것일까? 이 의문에 자문자답을 하자면, “그게 교사”인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지 그 역은 아니다. 보봐르의 명제를 원용하면, 선생은 선생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선생으로 길들여질 뿐이다. 학교에 ‘이상한’ 선생이 드문 이유는 교사를 둘러싼 구조적인 측면에서 찾아야 한다.
 
첫째, 교사인 사람은 교단에 서기까지 줄곧 체제순응적인 삶을 살아왔을 가능성이 많다.
특히 요즘 교대 들어가기는 하늘에 별 따기다. 치열한 학력경쟁의 관문을 뚫고 교대/사대에 들어가 임용고시 패스하기까지 미래의 교사들은 시스템이 요구하는 반듯한 삶을 살도록 길들여진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모범생으로 길들여지는 과정에서 어떤 반항적이거나 전복적인 기질과 성향이 거세될 것은 필연이다.
 
둘째, 임용고시의 폐해가 심각하다.
교사 길들임의 정점에 임용고시라는 괴물이 도사리고 있다. 임용고시의 탄생배경이 이를 말해준다. 노태우 군사정권기에 탄생한 임용고시(1991년)는 전교조의 탄생(1989년)과 궤를 같이 한다. 이전까지 교사들은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해왔다. 자유당 시절에는 선거철이면 오전수업만 하고 오후에 집집마마다 돌면서 이승만을 위한 선거운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교사집단이 전교조의 노랫말처럼 “굴종의 삶을 떨쳐 반교육의 벽을 부수고” 분연히 일어선 것이다. 독재정권의 입장에서 교사집단의 저항에 엄청난 위기의식을 느꼈다. 전교조 교사 1,500명을 교단에서 쫓아내는 초강수로 응징하는 것에 이어 향후 교사집단을 길들이기 위한 묘수로 ‘임용고시’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IMF 이후 교직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짐에 따라 경쟁이 치열해진 것과 함께 임용고시제도의 도입은 요즘 젊은 교사들 가운데 “이상한 선생이 희귀한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임용고시가 어떻게 교사들을 순치시키고 교육혼을 말살하는가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에서 심도 있게 논하겠다.)
 
셋째, 교직사회의 보수적 속성이다.
앞 세대가 이룩한 지적 유산을 후세대에게 전수해주는 것을 본연의 목적으로 삼는 점에서 교육은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속성이다.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사집단은 급진적이기보다는 온건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지닐 수밖에 없다. 더불어, 안정된 직장에 특히 여교사의 경우 최고의 직업으로 평가받는 점에서 교사집단은 중산층 특유의 안정을 희구하는 소시민적 성향이 내면화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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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인 벗들은 눈치 채셨을 것이다, 이 글의 제목이 김현희 선생님의 책 제목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를 패러디한 것을.
이상한 선생이 많다는 주장과 드물다는 주장은 일견 서로 모순되지만, 우리 두 사람이 학교사회를 바라보는 문제의식은 거의 같다. 다만, ‘이상한’이란 수사에 대한 내포와 외연이 서로 다를 뿐이다. 김 선생님이 말하는 이상한 선생은 한마디로 “선생 같지 않은 선생”이다. 내가 말하는 이상한 선생은, 반교육적인 부조리와 불의로 얼룩진 교직일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반란을 기도하는 긍정적 의미의 “또라이 같은” 선생을 뜻한다. 분석철학에서 말하는 약정적 정의(stipulative definition)로서 ‘이상한’이란 표현의 의미를 나는 이렇게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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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실천교육교사모임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독재적인 학교장의 횡포에 피해를 입은 교사가 벗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글이 올라 왔다. 그런데 많은 젊은 교사들의 반응은 “어쩌겠나, 참아야지”라는 식이었다. 그 중 어떤 이는 “교사의 본질은 수업이니, 수업으로 보여주자”고 한다. 교사가 수업 잘 하는 것과 학교장의 횡포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황당할 뿐이다. 이러한 소시민적 온건노선 가운데 나름 논리를 갖춘 경우로 흔한 주장이, 교육제도의 모순이든 학교 내의 부조리든 구조적 모순은 교사가 어찌할 수 없으니 “자기 교실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나는 이게 실천교육교사모임에 참여하는 교사들의 평균적인 모습이라 생각한다. 실천교육교사모임에는 “실천”이 없는 것이 치명적인 한계다. 반면, 전교조는 지금까지 늘 엉뚱한 실천으로 교사대중과 국민의 신뢰를 잃어 왔다. 이 둘을 반반 섞은 조직이면 참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건강한 식견이라 할 수 없다. 무인도에서 학생도 학부모도 없이 혼자 선생 한다면 몰라도, 사회적 모순과 동떨어진 교사의 교육실천은 생각할 수 없다. 이를테면, 한심한 전 대통령을 촛불로 쫓아내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는 칠푼이 아부지를 찬양해대는 국정 역사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수학을 가르치든 국어를 가르치든 교육은 그 자체로 도덕적 가치와 판단을 핵심으로 한다. 따라서, 교무실에서 불의에 편승하는 교사가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정의를 가르칠 수 없는 것이다.
 
페스탈로치의 꿈을 품고 교단에 선 젊은 교사의 가장 심각한 고민이 수업기술도 교육철학도 아닌 “배구 잘 하는 것”인 이것은 미친 학교다. 자연을 벗 삼아 실컷 뛰 놀아야 할 아이들이 학원 다섯 곳을 돌며 몸과 마음이 망가져 가고, 학교 교사는 학원에서 아이들이 다 배워 온 탓에 정상적인 수업 진행을 못하는 이것은 미친 교육이다.
 
이 총체적으로 미쳐 가는 교육현실에서 교사에게 요구되는 제일 중요한 자질은 “과격함”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 교사들은 배구할 때만 과격하고 교무회의 때는 너무 온순한 것이 유감이다. 교육공무원인 사람이 근무 시간 중에 때론 학생교육을 방기하면서까지 직무와 무관한 놀음을 감행하는 과격함을, 공중에서 스파이크 펑펑 내려 꽂는 과격함을, 교육모순의 상황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현실을 나는 통탄한다!
(나를 꼰대라 비난해도 좋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네크라소프의 일갈이 우리 시대의 교사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어, “이상한 선생”이 많이 나오길 바라며 지루한 글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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